
돌이킬 수 없는 그날의 사고
어느 날 한 열차가 탈선 사고를 당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과 함께 절벽으로 떨어진 그 열차가 밤마다 가마쿠라선 위를 달린다는 소문이 세상을 달구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그 소문에 하나둘씩 그 열차에 오른다. 단 4가지 규칙이 있었다.
하나 죽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다.
둘 피해자에게 곧 죽는다는 사실을 알려서는 안 된다.
셋,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어딘가 다른 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사고를 당해 죽는다.
넷,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만일 열차가 탈선하기 전에 피해자를 하차시키려고 한다면 원래 현실로 돌아올 것이다.
약혼자를 떠나보낸 여자, 아버지를 여읜 아들, 3년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짝사랑을 잃은 남학생, 사고의 피의자로 지목된 기관사의 아내 그들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에도 각자의 마지막 인사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또 자신에게 전하려 열차를 오른다.
떠나가며 전하는 사랑의 인사
재난은 예상치 않는 어느 순간에 느닷없이 들어닥친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사회생활에 실패하여 절망하는 중에, 사랑을 말하기 직전에, 평범한 일상에 예고 없이 찾아온 열차 사고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슬픔과 그리움에 혹은 회한에 사무쳐 아직 그날 사고 전의 시간을 달리는 유령열차에 탑승한다.
네가 행복하게 사는 것. 구로랑 신나게 놀고, 돈까스 덮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난 네가 평생 웃으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할머니가 돼서도. 평생. 영원히. 본문, p.88
그곳에는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약혼자와의 한 없는 사랑을 되새긴 연인이 있었고
그나저나 젊은 사람들은 참 좋겠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본문, p.156
떠나면서도 아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싶었던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본문, p.244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더라도 3년 동안 전하지 못한 진심을 전한 남학생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철도회사의 과실이지만 사고열차 기관사의 아내로서의 책임감에 석별의 정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모든 말을 경례로 대신한 사람이 있었다.
이 열차는 말이지, 탈선 사고로 인해 마음에 맺힌 게 있는 사람 눈에만 보여.
열차가 달리면서 내는 소리도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한테만 들리고. 당신은 이 열차가 보이나 보네 본문, p.71
사랑은 차원을 뛰어넘는 힘이라고 했던가. 유령열차는 떠나간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사랑이 만들어 낸 이승과 저승의 차원을 뛰어넘는 기적이었다. 피해자들이 곧 죽는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피해자를 살리려고 역에서 같이 내릴 수도 없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회한을 떨쳐내고 슬픔 속에서 제대로 하지 못한 이별의 말을 전할 수 있게 한 그 열차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남겨진 사람들을 걱정하는 그들의 사랑과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남겨진 사람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 사랑은 사회생활에 실패하여 절벽 밑에 떨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웠고, 사랑의 힘으로 성장한 남학생이 있었으며, 사고 당시의 시간에 멈춰있던 남겨진 사람들의 시계를 비로소 다시 움직이게 했다.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
재난, 피해자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앗아가고 파괴하는 시련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사고 이후 처음에는 눈물로 하루를 보내고 그날의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무엇에서 이들이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을까?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남겨진 사람들의 '연대'였다.
언젠가 당신의 미래에 눈부신 빛이 비치기를 기원하고 믿고 확신하며 본문, p.293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사고 기관사의 아내라는 책임감에 다른 유족들에게 사과하는 할머니가 있었고 반대로 한 유족은 책임감과 슬픔에 힘들어 하는 기관사의 아내를 걱정하며 힘이 되려 위의 인용을 포함한 편지를 보낸다. 유령열차에서 위안을 얻은 사람들은 아직 그날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권하며 자신이 받은 위로를 나누려고 한다. 또한 사랑하는 여학생을 잃은 남학생은 그 여학생의 남동생을 사랑하는 여학생 대신 매일 배웅해 주며 서로의 힘이 되어준다. 재난의 고통은 삶을 앗아갈 수도 있지만 타인에 대한 이해와 연민으로 연대한다면 삶의 시계는 다시 움직일 수 있음을 작가는 말한다.
총평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걸 알았더라면 나도 안죽었을 텐데. 그만 갈게 본문, p.319
예고없이 닥친 재난에도 사랑의 마지막 인사로 위로받고 자기를 돌본 남겨진 사람들은 아직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연대하여 함께 아픔을 극복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돌이킬 수 없는 죽음과 이를 사랑과 연대로 극복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내 눈시울을 많이 자극했다. 서평을 쓰면서도 계속 울음이 나와서 다 쓸 수 있을까 싶었다. 특히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위로는 한없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다가와 더욱 그랬다.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나누는 사랑과 위로로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다. 또한 그 사랑을 바탕으로 고통 속에 성장하는 인물들은 내 자식같이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사람들이 연대하듯 앞의 내용이 뒤에서 연결되고 약간의 반전도 있으며 각 인물들의 속마음도 알아가면서 느끼는 재미도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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